[기자수첩] 세종시의회 시민의 목소리 경청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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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세종시의회 시민의 목소리 경청해야
  • 김은지 기자
  • 승인 2018.12.0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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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MBS 취재기자.

신입사원 일색인 세종시의회의 첫 예산 관련 ‘항명’이 결국 무위로 끝났다. 할 거면서 분란만 자초하고 해당 예산과 조례안에 혼란만 남겨 시의원은 정치적 흠집을 집행부는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다.

이는 지난달 기자들에겐 기사 거리를 시민들에겐 허탈을 준 조치원 뉴딜 사업 예산안과 정치 싸움으로 비화된 ‘무상 교복’ 지급 방식과 관련된 세종시의원의 의정 활동이란 명분의 ‘작태’에 관한 사항이다.

세종시 의회의 조치원 뉴딜 사업 예산 삭감과 무상 교복 지급 방식이 왜 시민의 공분을 일으켰는지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분란의 신호탄을 쏜 곳은 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의 ‘조치원 뉴딜’ 사업 관련 50억 원 전격 삭감이며 시민의 공분을 산 이유는 ‘뚜렷한 이유’ 없이 자신의 지역구인 김원식 의원이 이를 주도해 시민의 저항은 더욱 거셌다.

무상 교복 사태는 민주당 일색인 당내 파벌 싸움에 학생과 학부모가 희생될 뻔했다. 당시 교복 관련 교육안전위 상임위원회에서 ‘현물’ 지급을 이미 결정했고 보도 자료 통해 확정 되는 듯했지만 다른 상임위 박성수 의원 발의의 상반된 수정 조례안이 상정되면서 ‘현물’ 조례안이 ‘철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박성수 의원의 ‘현물 또는 현금’ 수정 조례안도 ‘뚜렷한’ 이유가 없고 단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 확대와 부실 여론 조사 등을 주장하지만 선듯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조치원 뉴딜 삭감은 지난달 30일 예결위원장인 김원식 의원은 자신이 삭감을 주도한 50억 원을 살렸으며 교복 지원 방식은 박용희 의원의 수정안으로 공이 최교진 교육감 손으로 넘어갔다.

여기까지가 이미 언론에서 제기된 세종시의회의 ‘조치원 뉴딜’과 ‘무상교복 사태’에 대한 전말이다.

시의회는 시민을 대표하는 ‘대의’ 기관이며 여기에 속한 시의원은 시민의 한 표, 한 표에 의해 만들어진 ‘자리’다. 즉 시민의 의견은 물론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알고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 보름간 간 세종시를 혼란과 다툼의 장으로 내몬 이들 ‘시의원’은 시민과 얼마큼 대화했고 현장으로의 행보를 통한 소통이 있었는지 반문하고 싶다.

조치원 뉴딜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업이 아니다. 지난 4년여 동안 조치원 시민이 공부하고 전문가를 찾고 밤을 지세면서 서툴지만 지역 발전을 위해 갈고 닦고 수정한 노력의 산물이다.

무상 교복 지원은 보편적 복지를 위해 ‘현금’ 보다는 ‘현물’ 지원이 타당하며 이를 위해 학부모 관련 단체, 시민단체 등에서 ‘현물’ 지원을 요구했으며 세종시교육청에선 여론 조사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도통 시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솔직히 들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번 사태는 다만 자신의 정치색 강화와 강한 의원 뒤에 줄서려는 신입사원의 패거리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임을 선포한 결과다.

그러다보니, 시민의 소리는 안중에도 없고 들리지도 않는다. 자신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조치원 뉴딜 예산을 삭감 했지만 아이템을 잘 못 잡았다. 조치원 뉴딜은 다른 예산과 다른 시민의 노력과 땀이 들어간 사업이며 예산이다.

무상교복의 막판 박성수 의원의 수정안 상정은 향후 같은 세종시의회 안에의 분란의 곤고한 습습한 결과며 또한 시민의 소리는 듣지 않는 ‘소신’이란 명분에 사로잡힌 ‘고집’의 결과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잘하고 있다’라는 자만심에서 출발한다. 이번 두 가지 사태로 혹시 세종시의원들 자신이 ‘잘하고 있다’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이다.

초선 의원을 신입사원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격하’ 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은 정말 고달프며 힘들고 열심히 해도 선배들을 따라가기 힘들다.

대부분의 신입사원들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주말과 개인 일과는 거의 없다. 그렇지 않는다면 먼저 시작한 선배를 따라가기 힘들다.

노력 하고 있다며 초선의원들은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서 시민의 뒤에 줄을 설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영달을 위해 강한 누군가 뒤에 줄을 설 것인가?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시민은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다 느끼고 알고 있다. 다만 소리를 내는 시민과 그렇지 않은 시민이 있을 뿐이며 소리를 내지 않는 시민은 다만 선거 때 ‘투표’로 말한다.

시민을 정말로 무서워하는 시의원, 행사 때 앞자리에 앉아 뭐라도 되는 양 뻣뻣한 시의원, 줄서는 시의원, 귀를 닫은 시의원 등 안보는 것 같지만 시민이 다보고 있다. 두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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