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현충원] 광복의 빛, 하나의 반도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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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충원] 광복의 빛, 하나의 반도를 꿈꾸다
  • 뉴스밴드(편집부)
  • 승인 2015.12.2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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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 관리과 성지해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요.’

1950년 6월, 부부의 연을 맺은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남편과 생이별을 해야만 했던 여인이 있었다.

열흘만 훈련받고 돌아온다던 남편은 65년간 돌아오지 않았다.

신혼집에 홀로 남겨진 새색시 그리고 이미 뱃속에 있던 아들... 근본 없는 자식 소리 들을까 홀몸으로 엄하게 아들을 키웠다.

혹시 남편이 돌아올까 이사도 가지 않았다.

그가 썼던 물건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달랬다.

그리고 지난 10월, 금강산에서 남편을 다시 만났다.

‘내 미안하오, 돌아가지 못해서.’ ‘괜찮아요. 그리고 고마워요, 여보. 세상 떠난 줄 알았는데 살아있어 줘서...’

백발의 노인이 된 여인은 그 시절 열아홉 새색시처럼 수줍게 웃어보였다.

지나온 세월동안 켜켜이 쌓였을 타는 그리움이 2박 3일의 이산가족 상봉으로 얼마나 해갈될 수 있었을까?

광복 70주년인 올해에도 우리는 왜, 이렇게 서글프고 애잔한 광경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우리 민족은 일제치하 35년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며 그토록 염원하던 찬란한 빛을 되찾았다.

그러나 자주적이고 통일된 한반도를 우리 품에 온전히 안아보지도 못한 채 우리민족은 또 다른 고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은 각각 군대를 주둔시키며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였다.

이후, 미소 양국의 냉전이 심화되면서 한반도의 분단은 점점 고착화되었고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 지르는 얼음장 같은 그 철책선은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서 우리민족의 피부 깊숙이 파고들어 한 민족 내 갈등과 분열을 더욱 심화시켰다.

일제강점기 때 보다 두 배 더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해방둥이를 비롯한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수탈이 낳은 가난과 한국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났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실현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남북한의 이질화는 더욱 심화되었고 일천만 이산가족은 맥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리움으로 신음해야만 했다.

분단 70년인 2015년,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마감하고 다가올 광복 100년과 통일된 한반도 맞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막대한 경제적 편익과 함께 일자리 창출 및 동북아 허브로서 한국의 입지가 강화되는 등 남북통일은 가히 ‘대박’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이점을 잉태하고 있다.

우리는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상호 신뢰를 구축하여 건실한 통일기반을 다져야 한다.

이를 위해 올바른 나라사랑 교육으로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고 기념하여 전 국민의 애국심 함양을 도모해야한다.

또한 문화, 종교, 스포츠, 학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확대하여 통일에 대한 국민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지난 6월과 8월에 한국영화계에서 큰 인기를 끈 영화가 있다.

하나는 2002년 서해 연평도 NLL 부근에서의 해상전투를 그린 영화 ‘연평해전’이며 다른 하나는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암살’이다.

한국전쟁과 광복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특정 월에는 두 영화의 인기에서 보듯 애국심과 통일에 대한 관심 또한 최고조에 달했다.

어느덧, 나뭇가지 위로 새하얀 나비가 소복소복 내려앉는 12월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 6월과 8월의 그 열기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일시적인 관심보다는 더 큰 애국심이 우리 일상 속 저 깊은 곳까지 뿌리내려 무궁 무궁한 통일 조국으로 피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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