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언어를 쓰는 '다(多)문화 아이'로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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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언어를 쓰는 '다(多)문화 아이'로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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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8.1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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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엄마'의 아이들 ⑤

<끝> 이들을 어떻게 안을 수 있을까/좌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3000명이 넘는 이주여성 자녀들이 태어나고, 그만한 숫자가 학교에 입학하고 있다. 이미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만 1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지금껏 '숨어 있는' 소외계층이었다. 아이들은 점점 인종적 소수집단으로 소외될 수 있다. 이들의 문제에 대해 지금 대책을 세워 실행하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 사회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각 현장에서 이 문제를 고민해 온 권오희 수녀(베들레헴 어린이집), 민성혜 교수(남서울대학교 아동복지학과), 손소연 교사(안산 원일초등학교), 양승주 가족정책관(보건복지가족부), 오성배 연구위원(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민성혜 교수(이하 민)=작년 여름 만 4~7세 이주여성 자녀 165명과 엄마들을 만나 조사했습니다. 엄마 얼굴을 그리지 못할 정도로 모자(母子) 관계가 손상된 아이들이 많아 놀랐습니다. 어릴 땐 엄마가 들려주는 얘기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데, 서툰 한국말로는 서로 의사소통도 힘듭니다. 아이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고, 커서도 엄마와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오늘 제안하고 싶은 이야기는, 엄마가 자신의 모국어로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성배 연구위원(이하 오)=대신 한국어 교육은 아버지와 사회가 맡아 줘야 합니다. 두 개의 언어를 쓰도록(bilingual) 키우는 것이죠. 미국에서도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학생이 고학년으로 갈수록 성적도 더 좋고, 자신에 대한 정체성도 확고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거든요.

▲손소연 교사(이하 손)=2000년에 태어난 안산지역 이주여성 아이들이 올해 많이 입학해서 안산시는 난리였습니다. 어머니 국적은 다양한데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아이들의 학습 부진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학급 40명 중에 그 아이들만 돌보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두 개의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는 다른 외국어도 배울 수 있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두 가지 문화를 양쪽 다 제대로 이해 못하는 걸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주여성 아이는 지진아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아이들이나 담당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연수 체계가 마련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양승주 가족정책관(이하 양)=학교에 가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개별적으로 지도해 주면 안 됩니까"라고 물으면,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그러면 애들이 왕따당한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공교육이 참 아쉽다고 느꼈어요. 다문화 가정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따로 보충수업 받는 공교육 시스템이 정착돼 있으면 굳이 이 아이들이 눈에 띌 리도 없고, 따돌림을 당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어서죠.


지난 6일 조선일보 회의실에 모인 권오희 수녀, 양승주 가족정책관, 민성혜 교수, 오성배 연구위원, 손소연 교사(왼쪽부터).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손='역차별' 문제도 있습니다. 다문화 아이들만 보살피면 다른 한국 아이들이 역차별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쟤는 나하고 똑같은 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데 선생님은 쟤만 돌본다"고 느낍니다. 학부모들이 항의하기도 합니다.

다문화 아이들이나, 우리 사회 저소득층 아이들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력지원도 급합니다. 봉사자한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돕고 싶다는 마음은 좋지만, 책임감이 부족해서 쉽게 일을 빠지고 그만둡니다.

자기를 가르치고 돌봐 주던 선생님이 어느날 말도 없이 사라지면 아이들은 크게 상처받습니다. '다문화 시대'에 맞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교사와 보육 지원자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제주에서는 정년 퇴임한 교사들을 활용했더니 효과가 좋았다고 합니다.

▲민=언제 누가 가더라도 일정한 과정을 밟아 가르칠 수 있도록 모든 프로그램을 '매뉴얼'로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아이가 도시에 있느냐 농촌에 있느냐에 따라 '도시형', '농촌형'으로 나눠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양=문제는 사회적 뒷받침입니다. 아이들이 제때 보육시설만 가도 문제의 80%는 해소된다고 봅니다. 이주여성 엄마들과 자녀들이 많은 농촌지역에는 특히 보육시설이 모자랍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못 간다면 그 부분은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는 차원에서 '무상교육' 얘기도 나옵니다. 아무튼 가장 우선순위는 아이들에게 공적인 교육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권오희 수녀(이하 권)=저는 이주여성 자녀들에 대한 '무상교육'에 반대합니다. 공짜면 제대로 교육을 안 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비용은 자기가 부담하게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전에는 어디든 갈 때 처음에는 다 공짜로 데리고 갔어요. 그러니까 이 여성들이 '내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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