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관수 칼럼] 신의에 목마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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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관수 칼럼] 신의에 목마른 세상
  • 임관수 논설위원
  • 승인 2011.11.2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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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관수 논설위원.
독재정치 시대에는 불신이 일상화 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식 민주주의는 독재정치를 미화하는 수사였고, 전두환 대통령의 정화라는 것도 구테타를 반대하는 세력을 대상으로 한 정화라는 성격이 강했다. 진실은 탄압을 받았다.

그런 세상을 살면서 민주화가 되면 언론의 자유가 일상화됨으로써 진실이 세력을 얻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빗나갔다. 허위가 진실로 위장하여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지고, 이러한 거짓 정보의 홍수 속에 거짓말들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거짓은 젊은이에게 아주 효과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젊은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적지만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믿고, 사랑과 분노에 쉽게 빠지며, 용감하고, 충성심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거짓 정보로 분노를 자극하면 진실을 추구하기보다 쉽게 믿고 그것에 충성심을 가지고 용감하게 나서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분노 때문에 거짓정보의 희생자가 되곤 했다.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권력을 이용해 군대를 가지 않았다는 병풍은 그런 젊은이들의 분노를 이끌어내는데 아주 효과적인 소재였다.

광우병 파동을 일으켰던 사람들은 처음부터 광우병이 국민의 건강에 큰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정부에 대한 증오의 돌파구로 광우병을 이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고등학생들은 미국산 수입 소고기를 먹으면 반드시 광우병에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반대의 목소리와 현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사대강 개발사업이 홍수를 유발할 것이라고 반대하던 사람들은 폭우 속에 홍수피해가 줄어든 것을 보고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다. 여당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청사를 세종시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하여 당선이 된 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말을 뒤집어도 국가경제를 위해서라며 당당하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폭격도 우리 정부가 북한을 홀대한 결과 나타난 당연한 결과라는 주장도 들린다.

이러한 신의를 잃는 말들의 홍수 속에 조용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대부분의 국민들은 속으로 비판은 하지만 앞에 나서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낙엽처럼 차곡차곡 쌓였다. 정치가들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떤 주장을 했는지를 기억했다가 시간이 흐른 후에 그 결과를 가지고 국민이 평가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기능을 언론이 맡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거짓 정보로 신의가 떨어진 이 세상에 어떻게 신의를 회복할 수 있을까?

자공이 정사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였다. “식량을 넉넉하게 하고, 군비를 넉넉하게 하고, 백성들이 나라의 명령을 믿도록 하는 것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하는 수 없이 이 세가지를 버리게 될 경우에 셋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군비를 버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공은 “하는 수없이 남은 두 가지를 버릴 경우에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라고 물으니 공자는 “식량을 버려야 할 것이니 예로부터 식량이 없으면 사람들이 다 죽게 마련이지만 백성들이 나라의 령을 믿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신의의 중요함을 말했다.

사마광은 신의란 군주의 보물이다. 나라는 백성에 의해 보존되고 백성은 신의에 의해 보존되니 신의가 없으면 나라를 지킬 수가 없다.

이런 까닭으로 옛날 제왕들은 천하 사람들을 속이지 않았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자기나라 백성들을 속이지 않았으며, 집안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친족들을 속이지 않았다. 논어 안연 12편에 나오는 말들이다.

이런 신의의 관점에서 북한을 보면 북한은 군대와 경제, 신의 중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군대를 위해 모든 역량을 결집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경제적 논리를 주장하면서 정부청사의 세종시 이전을 공약했다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백지화하려고 했던 현대통령은 경제를 위해 신의를 버린 것이다. 북한보다는 남한이 좋은 정치이지만 가장 중요한 신의를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 다 바람직하지는 않다.

박근혜가 인기가 있는 것은 다른 정치인보다 신의를 중시했던 때문이다. 신의는 말을 행동으로 옮길 때 나타나므로 말을 아끼면 신의를 잃을 일이 적어진다.

그 연장선상에서 안철수 신드롬이 등장한다. 그는 기업가이면서 경제보다는 신의를 중시했다. 만약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개인에게도 팔았다면 그는 더욱 부유해졌을 것이다. 회사를 외국에 팔 기회도 있었다.

경제를 중시하는 정부 하에서 경제보다 신의를 중시하는 그의 태도에 국민이 열광을 한 것이 안철수 신드롬이 아닐까?

안철수 신드롬이 신의를 중시하는 정치풍토확산에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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