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북부보훈지청] 주권회복을 향한 열망의 함성 대한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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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북부보훈지청] 주권회복을 향한 열망의 함성 대한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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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2.2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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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북부보훈지청 권용화

1919년 3월 l일,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한국의 독립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이다.

탑골공원을 시작으로 “대한(조선)독립만세”의 함성을 전국으로 퍼지게 한 민족운동인 3․1운동은 대한민국의 힘찬 출발을 알리는 최초의 전국민 참여운동으로서 올해로 98주년째를 맞는다.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1876년(고종 3년) 강화도 조약체결을 시작으로 갑신정변, 갑오개혁, 명성왕후 시해 및 을사조약 체결 등을 거치면서 서서히 국권을 장악하였고, 조선의 국권을 완전히 장악한 일본은 1910년 치욕적인 한일합방조약의 체결을 기점으로 하여 헌병경찰이 통치하는 무단통치를 시작하였다.

일제의 무단통치는 언론, 집회, 정치, 신문 등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조선인들의 활동을 금지하고, 토지 수탈을 시행하여 농민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켰으며, 강압적인 교육을 통하여 일본인에 충성하는 조선인을 기르기 위하여 제복에 칼을 차고 교육을 실시하는 등 우리 선조들에게 참을 수 없는 치욕과 많은 제약을 주었다.

3ㆍ1독립만세운동은 외세의 침략이 시작되던 구한말부터 힘없는 백성들이 인내해 온 응어리진 고통과 서러움의 폭발로서 기록에 의하면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200여만 명이 참여하여 1500회가 넘게 전개된 대규모적 만세 운동으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항일투쟁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초석이 되었으며 5ㆍ4운동, 인도의 비폭력무저항운동 등 세계 각국의 독립운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주권도 없는 일제 강점 하에서 이루어지는 횡포에 대항하여 온 국민이 참여한 순도 높은 민족운동으로 전국이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소리로 들썩거렸던 98년 전의 그 우렁찬 함성은 주권회복, 자유회복을 위한 열망의 함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개벽지에 발표된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느껴지는 감정인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과 조국에 대한 애정이 민족적인 저항과 울분의 표출로 이어져 3․1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난 듯 하다. 근대화에 조금 뒤쳐진 우리 선조들이었지만 일제에 대한 반감과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고자 하는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것 같다.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한 3․1운동의 만세함성으로 전국 방방곡곡 아니 그 당시의 지구가 흔들거리지 않았을까.

일본은 3ㆍ1운동 후에도 근 26년간을 민족분열 및 말살정책 등을 전개하여 효율적인 식민 지배를 위한 탄압, 영구예속화를 위한 고유성 말살 및 우민화, 철저한 경제적 수탈 등을 실시하다가 다른 신흥강국인 미국의 무력에 굴복하고 만다.

1919년 3월 1일은 우리 선조들이 잃어버린 자유와 주권회복을 위하여 지식인, 종교인, 상인, 농민 등 전 국민이 거리에 나서서 “대한민국만세”를 외친 기념비적인 날이다.

늘 마음껏 누리기에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 우리가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자유롭게 한민족으로서 누리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어렵게 얻었는지, 자유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자유를 위하여, 주권을 위하여 스스로를 산화하신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다가오는 98주년 3ㆍ1절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기념식 행사에도 참석하고 주변의 독립운동 관련 시설을 찾아서 선열들의 고귀하고 숭고한 조국애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후대에 물려준 선조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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