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북부보훈지청] 스무살 선생님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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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북부보훈지청] 스무살 선생님의 선택
  • 뉴스밴드(편집부)
  • 승인 2016.07.0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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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팀장 경 규 선

6월 호국보훈의 달을 지나 7월이 되었다. 

호국보훈의 달 행사를 준비하느라 주말도 반납하고 무더운 날을 나름 힘겹게 보냈지만, 이런 날씨에 6·25전쟁을 겪으신 호국영령의 고단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호국보훈의 달에 못지않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바로 7월 7일이다.

7월 7일은 국군이 6·25전쟁에서 최초로 북한군을 무찌른 날로서, 역사적 가치가 큰 전승 기념일이며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인 충주 동락초등학교의 이름을 따서 이 전투를 동락전투라고 부른다.

동락전투에는 6·25전쟁 발발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주역이 있다. 전쟁 당시 동락초등학교의 선생님이었던 김재옥 선생님이다. 김재옥 선생님은 1950년 6월 20일에 동락초등학교에 부임하였으나 일주일도 되지 않아 6·25전쟁이 발발하였고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진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의 터전을 떠날 수 없다며 홀로 학교에 남으셨다. 그리고 며칠 뒤인 7월 6일 아침, 시끄러운 전차 소리가 학교에 요동친다. 수천 명의 북한군과 전차가 학교운동장에 들어선 것이다. 북한군은 선생님에게 국군의 행방을 물었다.

선생님은 국군이 이미 물러났다고 말해 북한군을 안심시킨 후, 밤늦게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국군의 위치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군을 찾아 나선다. 몇 시간동안 산길을 헤매다 간신히 국군을 만나 북한군의 위치를 제보한다.

하지만 2,000여명의 북한군에 비해 300여명의 국군의 수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부족했다. 더군다나 북한군은 전차는 물론 각종 중화기로 무장한 상태였다. 하지만 국군은 포기하지 않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습을 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7월 7일, 국군은 보초도 없이 무방비로 노출된 북한군을 기습 공격하여 1개 연대를 섬멸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로 국군은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었고, 이때 노획한 소련제 무기는 소련이 북한을 돕고 있다는 증거가 되어 유엔군이 6·25전쟁에 참전하게 되기도 하였다. 동락전투를 이렇게 승리를 이끈 김재옥 선생님은 당시 겨우 스무살이었다.

이를 기리고자 동락초등학교에는 1990년 김재옥 교사 기념관이 들어섰으며 매년 7월 7일이면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덧붙여 다가오는 7월 7일에는 동락초등학교 맞은 편 일대에 조성 중이었던 동락전승지 성역화 사업이 완료되어 제막식을 개최한다.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그 상흔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필자 아버지의 형제분들도 전쟁 중에 두 분이나 목숨을 잃으셨다. 이러한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고, 미래세대에 교훈을 전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

올 여름, 충주를 지나시는 분들은 동락전승지를 방문하여 동락전투와 김재옥 선생님의 업적을 아이들에게 알려 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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