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북부보훈지청]현충일(顯忠日)의 유래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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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북부보훈지청]현충일(顯忠日)의 유래와 의미
  • 뉴스밴드(편집부)
  • 승인 2016.06.01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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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북부보훈지청 김명식

금년 6월6일은 제61회 현충일입니다. 붉은 글씨로 되어 있어 보통의 공휴일로 인식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현충일의 유래와 의미를 아신다면 일반적인 공휴일과는 개념이 상당히 다르다는 아실 것입니다.

대게 한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국내의 문제가 누적되어 외침을 야기하는 것은 만고불면의 진리입니다. 외침 시 이를 격퇴하여야 국가가 수호됩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해방 후의 갈등을 극복 못하여 국내에 많은 문제가 누적되는 중에, 호시탐탐 남한의 적화를 노리던 북한의 불법기습으로 동족상잔의 대참극이 발생하였고 그 후유증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우리나라를 수호하기 위해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귀중한 목숨이 희생되어야 했습니다. 국가는 마땅히 숭고한 뜻을 기려 그분들의 넋을 위로해야 합니다.

현충일은 이처럼 북한의 도발 및 여러 위기에서 우리나라를 지킨 호국영령 및 순군선열을 기억하고 기리는 날입니다. 가정에서도 돌아가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국가를 위해서 숭고한 희생을 한 분에 대해서 추모함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손이 없다는 청명(淸明)과 한식(寒食)에는 사초와(莎草)성묘(省墓)를 하고 망종(芒種)에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져 왔으며, 역사적으로도 고려 현종5년 6월 6일에는 조정에서 장병의 유골을 집으로 봉송하여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보리가 익고 모내기가 시작되는 망종을 가장 좋은 날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1956년 현충일 제정 당시 정부가 6월6일을 현충일로 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전사자를 포함하여 제사를 지낼 수 없는 귀신(無祀鬼神)을 모신 제사일에는 망종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 후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정부가 6.25사변당시 산화한 전사자를 추모하고 기념하려는 의도에서 1956년 4월 19일 대통령령 제 1145호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거행토록 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현충기념일과 6.25사변 발발일이 포함된 6월25일을 연계해서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함으로써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추모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1970년 1월 9일 국립묘지령 제4510호로 연 1회 현충일 기념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현충기념일을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부르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공식적으로 현충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5월 15일 대통령령으로 공휴일로 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충일의 추모대상은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인데 제정당시에는 6.25사변 전사자에 한정되었다가 1965년 3월 30일 대통령령 제2092호로 국군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순국선열을 함께 추모하게 된 것입니다.

1997년 4월 27일 국가기념일로 제정.공포된 순국선열의 날에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 까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행사를 벌이고 있지만 현충일도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를 추모하는 날인만큼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거행하고 있습니다.

현충일에는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각 가정이나 기관에서는 조기를 게양하고 아침10시에는 전 국민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1분간 묵념을 올려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명복을 빌며, 국립현충원, 국립묘지, 전쟁기념관, 독립기념관 등 위령을 모신 곳을 방문하여 헌화합니다.

기념행사는 국가보훈처 주관아래 이루어지는데 서울에서는 국립현충원에서 대통령이하 정부요인들과 국민들이 참석하여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헌화, 분향, 헌시낭송 등으로 진행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된 것은 순국선열과 전몰장병 등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현충일을 단순한 공휴일로 생각하지 말고 유래와 의미 등을 곰곰이 생각하여 현충일 당일에 조기정도는 개양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에 대해서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추모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특히 무명의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에 대해서도 재삼 감사의 마음과 추모를 아끼지 않는다면 제 61회 현충일의 의미는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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