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칼럼] 시월상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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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칼럼] 시월상달에
  • 뉴스밴드(편집부)
  • 승인 2010.11.1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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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은 상달이라고 한다. 1년 농사를 지어 추수를 끝내고 곡간이 가득한 달이다. 이때가 되면 떡을 빚어 고사를 지내고 이웃과 나누어 먹기도 한다. 인심이 나는 계절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은 곱게 물든 단풍을 따라 발길을 옮기지만 우리네 농촌은 가을걷이를 하고도 갈무리하기에 손길이 바쁘기만 하다. 그래도 이맘때가 되면 각 문중마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시제에 제일 많은 공을 들인다.

우리민족의 조상숭배 사상은 그 어느 민족보다도 우월하다. 현대에 와서 소홀해진 면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조상을 생각하는 우리의 전통은 자랑스러운 미덕이다. 그래서 시월상달이 되면 햇곡식으로 정성스레 제물을 장만하여 시제라 하여 선조님들께 제사를 올린다.

그래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일가친척들을 만나고 조상님들의 훌륭한 미담을 후손들에게 전한다. 바쁘다보니 대체로 주말을 택하여 시제일자를 정해서 시행하지만 대부분 나이가 드신 어른들이 많이 보이고 젊은이들은 잘 보이질 않는다.

웬만하면 어른들은 물론이고 가족들이 모두 참여하여 시제를 모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싶다. 그리하여 먼 친척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정을 나누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가문의 전통이 계승되고 친족 간의 우애도 도타와질 터이니 말이다. 물론 각 문중마다 제례에 대한 전통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래도 수백 년 간직해온 민족의 고유한 풍속이기에 기꺼이 지켜져야 하리라 본다.

과거에는 한마당에 8촌까지 살았다 하여 8촌까지는 가까운 일가가 되어 자손의 번성함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런데 요즘은 4촌까지도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 친척의 한계가 애매해졌다.

당숙이나 당고모는 아예 호칭조차 생소해졌다. 누가 큰 할아버지이고 누가 작은 할아버지인지 모른다. 그러니 5촌이나 6촌은 촌수에서 멀어져 버렸고 더욱이 외가 쪽은 모르기 일쑤다. 과거에 삼족이라 하면 친가 외가 처가를 일컬었는데 요즘은 처가도 장인 장모 처남이나 처제 정도나 알고 있을 뿐 그 이외는 알지를 못한다.

구태여 씨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민족이 숫하게 많은 외침을 겪으면서도 말살되지 않고 지탱해 온 것은 씨족사회가 굳건하게 결속해 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사돈에 팔촌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아쉽고 부탁할일이 있으면 지금도 친척을 운운하고 동문을 빙자하면서 무엇인지 남이 아니란 걸 강조하려고 에를 쓴다.

또는 스승이요 제자임을 강조하거나 심지어 군대생활을 같은 부대에서 했다고 가까운 사이임을 내세운다. 심지어 같은 육군이거나 공군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렇게 가까운 처지를 필요로 한다면 차라리 일가친척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에서 느낀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대체로 ‘정’이고 대답한다. 비록 못살고 힘들 때에도 콩 한쪽을 나누어 먹는 우리의 정서 때문에 끈끈함이 묻어나는 백성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민족은 정으로 결속된 민족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아마도 우리의 정은 인류문화에 기여할 큰 덕목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미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숭배 사상이나 우리의 예절은 받들고 가꾸어야 한다. 우리가 외국에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전자제품이거나 조선공업이 우수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예절이 으뜸이다.

이정희 칼럼니스트.
외국에서 활동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한국인다운 예절을 지키면서 일해서 인정을 받고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삼촌과 고모의 인정으로 자라난 사람은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남이 아파할 때 동정하고 남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할 줄 안다.

그것이 대가족 사회의 씨족관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민족이 번영하고 이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최고의 미덕임을 인정한다면 시월상달에 조상님들을 생각하고 보다 가문의 결속과 번영을 빌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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