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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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 뉴스밴드(편집부)
  • 승인 2010.01.1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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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칼럼니스트
어설프게 화장을 한 여인의 얼굴은 어색하다. 남이 보기도 민망스럽다. 그런 것처럼 세상살이가 고달프다 해도 거짓과 꾸밈이 지나치면 역겨운 생각이 든다. 가정일이나 국가의 일이나 순서가 있고 질서가 있어야 가족이나 국민이 순응하고 화합을 얻어낼 수 있다.
 
그런데 아랍에미에르트에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게 되었다는 뉴스가 국민들의 마음을 조금은 넉넉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나서서 정상외교로 수출을 성사시켰다고 방송이며 신문에 대서특필했다. 물론 수백 억불에 해당하는 성과이니 흥분할 만도 한 듯싶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이나 미국에 핵심기술료를 지불하고 나면 우리나라에 얼마나 이득이 될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리고 수출은 이미 내정된 것이고 대통령은 고마움의 표시로 상대국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마치 대통령이 해결한 듯이 보도되었다. CEO출신 대통령이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비쳐지고 있으니 어설프게 화장한 여인의 꼴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희망이 있어야 오늘의 고통을 참고 견디어낼 수 있다. 따라서 희망은 백성들을 인도하는 선현의 말씀이 으뜸이다. 공자나 맹자를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백범선생은 우리의 정신적 지주였다.

백범이 저격당해 돌아가셨을 때 모든 국민은 하늘이 무너진 듯 슬퍼하고 애통해 했던 기억이 있다. 60년대를 살아온 젊은 지성인들에게 함석헌 선생은 그야말로 정신적 지주였다. 당시에 지식인이나 학생들이 많이 읽던 “사상계”라는 월간잡지에 함 선생이 권두언을 집필하곤 했다.

따라서 그 권두언을 읽은 젊은이들은 토론으로 희망의 불을 지피곤 했다. 모든 지성인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저명한 학자도 유능한 정치인도 종교지도자도 또는 시인이나 소설가도 본보기로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물론 다양하게 변천해가는 문화적 현상일 수도 있지만 도덕적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삶의 지표로 삼을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에게 가장 영향력을 주는 사람은 아무래도 정치인이다. 그런데 오늘날 정치인은 대체로 불신의 대상이지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이 정치판이 깨질까 걱정하는 세태이니 어찌 존경을 받고 믿을 수 있겠는가. 한때 대쪽 같은 정치인이라 하여 국민의 마음을 끌었던 정치인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지식을 가진 사람은 지식을 나누어 가질수록 좋지만 정치권력은 반만큼만 썼으면 좋겠다. 주어진 권력을 다 쓸 수는 없다. 그리고 정부나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두려워하지 말고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지식인이나 지도자가 있어야 하겠다.

권력의 눈치만 보는 지도자는 국민에게 외면을 당하게 되어있다. 우리나라가 강대국 틈에서 존속하게 된 것도 의지가 있는 민중의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풍속이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도록 변화되었다. 어른도 스승도 몰라보는 세상이니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어른다운 어른 스승다운 스승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물질과 재화가 중요하다 하지만 섬김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 조화롭게 화합하고 서로 믿고 존경하며 사는 세상을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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