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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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
  • 뉴스밴드(편집부)
  • 승인 2009.12.1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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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칼럼니스트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행복하기를 바란다. 부모형제와 처자식이 있고 직장이 있는 사람들까지 행복을 원한다. 타인의 눈으로 볼 때 유복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까지 행복을 쫒는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스스로를 쳐다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듯싶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불만이거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가치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남들이 보아도 측은해 보이는 사람들은 아무런 불만 없이 평온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경우가 흔히 있다.

어느 젊은이가 행복이 산 너머에 있다기에 그곳에 갔더니 그곳에서도 또 저 산 너머에 행복이 있다고 말하기에 또 산을 넘었지만 이미 날은 저물고 다리는 아프고 그래서 다리를 절며 되돌아 왔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에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6.25전쟁 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급작스럽게 벌어진 전쟁으로 인하여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부산까지 피난 와서 부둣가에 움막집을 짓고 어머니는 광주리를 이고 장사를 하고 어린 아들은 고사리 손으로 구두를 닦으면서 살았다.

움막집으로 돌아올 때 각자 무엇인가를 사들고 와서 나누어 먹고 식구들끼리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본 미국의 연구가는 남편이나 또는 형이 어디에 있는지 생사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살 수 있을까하고 의문을 품게 되었다. 많은 관찰과 연구를 한 후에 그가 내린 결론은 매우 긍정적인 것이었다.

한국인은 아이에게 젓을 먹이면서 키운다는 지극히 보편적인 사실을 관찰해 낸 것이다. 우리에게는 별스럽지 않은 일이지만 미국인에게 특별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분유로 애기를 키우고 있었기에 모유를 수유하는 한국인을 보았을 때 강열한 자극을 받았던 것이다. 모유를 먹고 자란 한국의 아이들은 인내심이 있고 어려운 난관에도 좌절하지 않는 특유의 성격이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면면히 흐르는 유교적인 군자사상이 그 바탕임은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대가족제도가 원동력임을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경제가 풍요로워짐은 물론 문화적으로도 살만해진 오늘날 사람들은 더욱 살기가 힘들다고 법석이다. 핵가족을 선호하고 그리고 키우기 힘들다고 자녀를 하나만 낳아서 키우는 현실에서 왕자처럼 공주처럼 자란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그들이 미국아이들과 다를게 무엇인가.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부터 보통 3-4개쯤의 학원에 다녀야 하고 방학이 되어도 할아버지나 외갓집에도 갈 수 없는 아이들이 오직 경쟁속에서 성장할 때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으랴 싶다.

직장에서의 지위나 학위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려니와 호텔처럼 화려한 아파트에 산다고 되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가족이 함께 모여 조부모와 부모를 받들고 형제자매들 사이에 화목하게 정을 나누고 살아갈 때 행복은 저절로 닦아 온다고 한다면 비웃을 것인가. 사람의 근본을 가르쳐야 한다. 제발 내 자식이 소중하거든 경쟁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를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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