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순한 가슴 <47>
상태바
소설-순한 가슴 <47>
  • 육희순 기자
  • 승인 2008.11.17 1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펫과 주인님 (9)

어서와. 내 펫이 된 것을 환영해.”
현관에서 나를 맞이한 미현이 말했다.

그녀와 약속한 목요일, 내가 도착하자 그녀는 따뜻하게 환영해주었는데 나를 환영한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하얗고 앙증맞은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집은 50평은 족히 될 듯한 아파트였다. 그녀는 화장실 옆방이 나의 방이라고 했다. 굳이 짐정리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가 배정한 방에 내 짐을 펼치고 있는데 그녀가 들어오더니 말했다.

“이거 미안해서 어떻게 하지. 오늘 같은 날은 같이 있어주어야 하는데… 조금 있으면 매세지가 올 거야. 지금 영화 찍으러 가봐야 하거든. 자세한 이야기는 갔다 와서 저녁에 해야 할 거 같은데. 나 없더라도 최 군하고도 사이좋게 지내.”

“최 군이요? 이집에 누구 또 있어요?”
“응,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야.”

담벼락을 벽이라고 내민다는 속담이 있듯, 강아지 이름이 최 군이라는 말에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그 말 때문에 내 자신도 영락없이 또 다른 강아지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오실 때까지 뭘 해야죠?”
"조금 신경 쓸 일이라면 최 군 밥을 하루에 두 번씩 잊지 말고 챙겨주는 일이야. 그밖에 특별히 할 건 없어. 그냥 집이나 잘 지켜. 참, 배고프면 냉장고에 붙어있는 스티커에 음식점 전화번호 있으니까 전화해서 배달해 달라고 하면 돼. 음식 값은 사인만 하면 나중에 내가 계산할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나자 초인종 소리가 났다. 찾아온 사람은 30대의 남자였다.

그 남자가 왠지 낯익다싶었는데 며칠 전 내가 대리운전을 하다가 만났던, 무례하기 이를 데 없었던 바로 그 남자였다. 미현은 그 남자를 따라서 급히 밖으로 나갔다.

나는 넓은 집에 혼자 남겨졌다. 물론 최 군이란 강아지가 있기는 했지만 밥만 제 시간에 주면 특별히 신경 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비록 펫이라는 신분으로 이 집에 들어왔지만 꼭 해야 할 일도, 강요당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펫으로서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보았다. 우선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면 좋을 것 같았기에 나는 청소도구를 챙긴 다음 청소를 시작했다. 우선 냉장고를 열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냉동실에는 성에가 가득했다.

썩어가는 냄새가 너무나 심해 나는 냉동식품의 날짜를 확인했다. 유효기간이 2002년도 8월이었다. 2002년도라면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해가 아닌가.

그때 구입한 상품을 5년이 자나도록 아직까지 냉장고에 넣어두다니! 뿐만 아니라 집안에는 덩굴 줄기처럼 거미줄이 번성했고, 벽에는 곰팡이가 가득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게도 그녀는 얼굴과 몸매는 신경 썼지만 집안에 대해서는 무심한 것 같았다.
아무리 바쁘다손 치더라도 집을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것에 대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얼굴에 공들이는 시간의 10분의 일만 투자했더라도 이런 처참한 광경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의 나태함으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