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면 경영이 보인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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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면 경영이 보인다7.
  • 이요섭
  • 승인 2009.08.19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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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노부나가中

오다 노부나가(中)

노부나가는 신출귀몰한 전술전략의 달인이며 용맹한 지도자였다. 그렇다고 그가 모든 싸움에서 이긴 것은 아니었다. 자주 실패했으며 손해를 본 전투도 숱하게 많았다.

그러나 그가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실패한 전투를 통해서 반드시 배울 점을 찾아내고 다음 전투에서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불같은 성격 탓에 주변 사람들이 쩔쩔매는 경우가 많았으나 일단 전투를 할 때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과 끈기도 가지고 있었다.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께다 군에게 치명적인 패퇴를 안겨주었다고는 했지만 그는 풍림화산 부대의 본진으로 함부로 쳐들어가지는 않았다. 아직 승산을 장담하기엔 일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후로도 7년을 기다린 끝에 풍림화산부대가 서서이 붕괴조짐을 보이자 일시에 쳐들어가서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았다.

미노(美濃)성 공략에도 7년, 혼칸치(本願寺)에서의 종교전쟁에서는 자그만치 11년이라는 세월을 견뎌내어 기어코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노부나가는 불세출의 영웅이었음에는 틀림없었으나 자신의 가신인 미쓰히데(光秀)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불에 타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데는 성공했으나 측근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었다.

페르시아 속담에 ‘아무리 뛰어난 영웅도 그가 부리는 하인에게는 영웅이 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완전한 의인도 완전한 악인도 없다.

그러므로 장단점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측근들에게서 존경을 받는 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들의 특성은 말년으로 갈수록 자신의 카리스마에 스스로 취해서 측근관리가 느슨해진다는 데 있다.

오만에 빠져서 처음처럼 세심하게 측근들을 다독이질 못한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시이저나 박정희처럼 역사적으로 수많은 제왕들이 불만을 품은 측근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이제 노부나가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자

① 노부나가의 성공비결
- 한 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실행했다.

-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알아서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을 중용했다

- 유능한 자는 그 출신에 상관없이 중용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제도가 확실한 시대였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인사였다 실제로 그의 오른팔과 왼팔 역할을 했던 미쓰히데는 떠돌이 무사였고 히데요시는 천민출신이었다

- 성취욕을 잃은 부하는 과거에 아무리 공이 많았다 해도 쓰지 않았다. 부하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게 한 것이다.

- 일사불란 한 명령체계를 구축하여 속전속결의 강군으로 육성했다

- 작전에서 실패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 실패를 거울삼아 다음 작전에서 활용했다

- 솔선수범하여 항상 부하들의 모범이 됨은 물론 성공한 자에게는 큰 포상을 내리고 실패 한 자에게는 벌을 내렸다. 노부나가는 호각지세의 전투에서는 스스로 앞장을 서서 용감하게 싸웠다.

또 아군이 유리한 전투에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누가 열심히 싸웠는지 똑똑히 보아 두었다. 전투가 끝나면 공과대로 아낌없는 상금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부하들은 주군이 보고 있다는 생각에 꾀를 부릴 수도 없었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의 다이묘들은 후방 멀리 진을 치고 앉아 장수들에게 돌격하라는 명령만 내리다가 전황이 불리해지면 후퇴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니 누가 목숨을 걸고 싸웠겠는가? 노부나가의 군대가 강군이었던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정보력을 중요하게 여겨서 첨단 병기를 알아보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냈다(下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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