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박영진 대신고 교장, "교사의 꽃은 담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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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박영진 대신고 교장, "교사의 꽃은 담임교사"
  • 뉴스밴드(편집부)
  • 승인 2012.07.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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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 대신고 교장.

KBS에서 방영된『TV는 사랑을 싣고』는 한동안 즐겨 시청하던 프로그램이었다.

이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춘 채 TV 앞에 앉아서 웃고 즐기며 푹 빠져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나운서나 리포터의 활약이 아니라, 나와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선생님들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부러웠던 것은, 선생님이 어린 학생들에게 사랑을 베풀거나 가르침을 주어 오래도록 잊을 수 없도록 만든 점이었다.

주인공들이 어려운 형편에 처했거나 힘들었을 때, 보살펴주고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기에, 선생님을 찾은 뒤에는 큰절을 하거나 얼싸안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으며, 등장하시는 선생님들의 면면이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이 방송 출연자들이 찾은 사람은 대부분 학창시절의 담임선생님이었다. 담임교사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하고,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분이다.

담임은 학급의 관리자로서 자기가 맡고 있는 학생들을 사랑하고, 학급운영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은 초등학생 같고, 중학교 선생님은 꼭 중학생 같다’는 이야기가 선생님들을 폄훼(貶毁)하는 말로 들렸는데, 지금은 선생님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이야기로 들린다. 고등학교 선생님은 고등학생다워야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고,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생활해야 학생들을 바르게 이해할 수가 있다.

담임선생님은 아침에 등교하면서 교실에서 학생들을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다. 학급 조회시간을 이용해서 학생들에게 생활지도를 하며 정신교육을 시키고, 학생들의 건강과 수업태도를 살핀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학생들의 급식지도를 하고, 청소시간에는 학생들과 함께 청소를 하거나 청소구역을 순회하며 지도한다.

그리고 일과가 끝나면 학생들을 귀가시킨 뒤에 교실 문단속을 하고, 학급학생들의 학습활동뿐만 아니라 가정생활을 살피며, 각종 상담활동과 진로지도 등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달파서 지금은 선생님들이 담임 맡기를 꺼리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중학생들은 사춘기의 아이들로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이며, 신체의 성장으로 인해서 행동이 천방지축이고, 사물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지 못한 나이여서 가장 위험하고 힘든 아이들이다. 그래서 여자 선생님들은 지도하기가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리고 고등학생들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시기이므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지만,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감독하고, 개인의 진로에 맞추어 대학진학 상담을 통해 대학입학 원서를 작성해야하기 때문에, 고3 담임은 3D 업종에 든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나돈다.

그러나 지난날에는 담임교사를 ‘교사의 꽃’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담임을 맡지 못하는 나이가 되면 끈이 떨어졌다고 했는데, 이는 교사로서의 참된 보람을 느끼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담임교사는 학생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살을 맞대고 부비면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기에 어떤 보직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교무부장직을 맡고 있을 때에도 후배교사들에게 말하기를, 교장선생님이 나에게 담임과 부장업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기꺼이 담임을 택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제일이지, 부장이나 다른 보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강변하면, 선생님들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정작 그렇게 믿지는 않는 것 같았다.

교단생활이 나는 올해로 35년이 되었다. 그동안 3학년 담임을 12번, 2학년 담임을 2번, 1학년 담임을 3번 맡아서, 모두 17번 담임업무를 통해 담임반 학생들과 함께 동고동락해 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담임을 많이 맡지 못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담임업무를 맡지 않고 수업만 할 때에는 별로 신바람이 나지 않으며, 학생들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하면서 담임교사들과의 관계도 소원하여 마치 대학에 출강하는 시간강사와 같이 소외감을 느낀다.

담임을 맡으면 일 년 동안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이 즐겁다. 3월에는 담임반 학생들과 함께 연간 계획을 세우고, 상담을 하면서 진로를 파악한다. 5월에는 많은 행사를 치르면서 학생들과 친숙해지고, 소풍기간에는 산 높고 물 맑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다.

방학기간에는 틈틈이 학생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듣고, 부진한 교과를 독려하면서 학습계획의 중간점검을 마친다. 2학기가 되면 체육대회를 통해 목이 터지게 응원을 하며, 10월에 열리는 축제를 치르면서 정이 깊어간다.

찬바람이 불면 공부에 열정을 쏟아 학급성적이 오르면 파티를 하면서 격려하고, 틈틈이 교지를 발간을 위해 원고를 모아 출판사를 드나들며 잉크냄새를 맡기도 한다. 겨울이면 학생들과 난로가에 둘러앉아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수험생들인 경우에는 상담을 통해 대학입학원서를 작성하여 대학에 보낸다.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 가운데 대학에 들어가면 방학기간에 찾아오거나 군에 입대할 때나 제대할 때, 더러는 회사에 취직하고서 찾아와 인사를 하는 경우도 여럿이 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담임을 초청하여 함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또 결혼할 때에는 예쁜 색싯감을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키며 주례를 부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한 인연은 담임을 맡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사의 꽃은 담임교사이고 이 업무를 맡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수 없다.

대신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에 나는 모든 교장, 교감선생님으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부임한 첫해에 1학년 10반 담임을 맡아 좌충우돌하면서 일 년을 보냈다. 이 아이들이 우리학교 6회 졸업생들이다.

다음 해에는 대학원 논문준비로 인해서 담임을 맡지 않았고, 5회 졸업생들의 수업만 담당했었다. 3년째 되는 해에 6회 졸업생들 3학년 8반 담임을 맡아서 한 해를 함께 보내고, 대학입학원서를 작성하면서 대학진학의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7회, 8회 졸업생들의 담임을 맡았고, 한 해를 쉰 뒤에 10회, 11회, 12회 때에도 3학년 담임을 맡았다. 13회 때에는 수업만 담당했으며, 14회, 15회, 16회 졸업생들의 3학년 담임으로 대학입시와 씨름하면서 지냈다.

그리고 19회 학생들이 입학하면서 학년총무 일을 맡아달라는 오병덕 학년부장님의 말씀을 따라서, 1학년 때부터 데리고 올라가서 3학년 졸업을 시켰고, 22회 학생들이 입학하면서 다시 총무를 맡아달라는 태상풍 학년부장님의 말씀을 거절하지 못해서, 22회 졸업생들을 데리고 1학년부터 함께 생활했다.

2학년 때에는 대전에서 열리는 갑년체전 행사에 우리 학생들이 기수단으로 공설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면서 함께 준비했고, 졸업을 시킨 뒤에는 23회 졸업생들의 3학년 담임을 끝으로 담임업무에서 손을 놓게 되었다.

한유의 잡설(雜說)에 천리마에 관한 글이 있다. 백락(伯樂)은 주나라 때 말을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났던 사람이다. 한유는 자신을 천리마로, 임금을 백락에 비유하여 이 글을 쓴 것 같다.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지만 그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쓴 글이다.

세상엔 백락이 있은 후에 천리마가 있으니,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비록 천리마가 있으나, 다만 노예(백락과 반대되는 의미로 말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의 손에서 욕을 당하며 보통 말들 사이에서 죽으니 결국 천리마라고 인정받지 못한다.

천리를 가는 말은 한번 먹을 때 혹 곡식 한 섬을 다 먹지만, 말을 먹이는 자가 그 천리마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먹이니 천리마가 비록 천리를 가는 능력이 있으나, 먹는 것이 배부르지 못하여 힘이 부족해서 그 천리를 가는 재주를 밖으로 나타내지 못한다. 또 보통의 말들과 같아지려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어찌 천리를 가는 능력을 구할 수 있으리오.

채찍질을 하여도 천리마에 합당한 도로서 하지 못하고, 먹여도 그 재주를 다할 수 없게 먹이며, 울어도 그 뜻을 알아주지 못하고, 다만 채찍을 대면서 말하기를 아, 천하에 좋은 말이 없구나 하니 오호라 슬프도다. 참으로 천리마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말을 알아보는 자가 없는 것인가.

우리가 담임교사로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에 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사장시키거나, 타고난 재주를 발휘하도록 돕지 못한 채 묻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있었는지 돌이켜보면 조심스러울 때가 많이 있다.

백락과 같은 유능한 선생님을 만났으면 그 재능을 펼 수 있을 텐데, 노예와 같은 담임을 만나서 천리마로서의 기량을 펼쳐보지 못하고 아깝게 사라진 아이들은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학생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서 천리를 갈수 있는 능력을 쏟아 붓도록 지도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또 몇이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교직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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