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면 경영이 보인다
상태바
역사를 보면 경영이 보인다
  • 이요섭 편집장
  • 승인 2009.05.15 1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신 범려
1. 재신(財神) - 범려(范蠡) 上,
나는 중국 월나라 때의 재상 범려를 존경한다. 그는 스승인 계연의 가르침을 따라 패망한 월나라를 재건시켰으며 각각 다른 조건과 상황을 딛고 큰 부를 축적해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그는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고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갖춘 사람이었다. 중국 저장성(浙江省) 우시(無錫)에 가면 범려와 서시의 정원으로 알려진 리위엔(留園)이라는 정원이 있다.

1999년, 우시를 방문했을 때 나는 리위엔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중국인들이 재신(財神)으로 떠받드는 범려라는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자성어, 오월동주(吳越同舟)나 와신상담(臥薪嘗膽),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중심에는 범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범려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자는 소백(少伯)이다. 그의 출생일시와 사망연대는 지금껏 베일에 쌓여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중 화식열전(貨殖列傳)을 보면 세 번이나 나라와 직업을 옮겨가며 크게 성공한 범려를 ‘공성신퇴(攻城身退)'의 표본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초나라의 지방 고을현령(宛令)이었던 문종(文種)과 함께 당시로서는 작고 힘없는 나라였던 월(越)나라로 갔다. 처음에는 월나라보다 큰 나라인 오나라로 가려 했으나 같은 초나라 출신의 오자서(伍仔胥)가 이미 오(吳)왕 합려(闔閭)의 신임을 받고 있는 터라 차선책으로 바로 옆 나라였던 월나라를 선택한 것이다.

범려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월(越)왕 구천(句踐)의 신임을 받아 군사뿐만 아니라 일체의 국정을 총괄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친구인 문종(文種)을 위해 자기는 군사를 조련시키는 일만 맡고 문종으로 하여금 국사를 경영하게 했다.

오나라는 월나라의 동쪽에 위치한 현재의 중국 저장성(浙江省) 쑤저우(蘇州)와 샹하이(上海) 부근에 있었다. 오나라의 합려왕은 이웃의 작은 나라인 월나라를 공격하던 중 방심하여 심각한 부상을 입고 귀국했으나 얼마 살지 못했다.

그는 죽으면서 아들 부차(夫差)에게 “너는 네 아비를 죽게 한 월왕 구천을 잊지 말라.”고 유언을 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오왕 부차는 그 말을 뼛속에 새기기 위해 십년을 한 결 같이 장작더미위에 얇은 천만 깔고 잠을 잤다.

울퉁불퉁한 나무 위에서 잠을 자자니 얼마나 등이 아프고 괴로웠겠는가? 그러나 부차는 보기 드문 효자에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등이 결리고 아파 잠을 못 이룰 때마다 아버지의 복수를 다시금 가슴속으로 다짐했던 것이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와신(臥薪, 나무위에 눕는다)이다.

결국 오왕 부차는 10년 만인 BC 494년, 월나라를 대파하고 월왕 구천과 범려를 비롯한 중신들을 종으로 삼았다. 월 왕 구천은 치욕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자살을 결심하려던 찰라 범려는 그에게 다가가 "굽힐 때는 굽혀야 하고 펼 수 있을 때는 펴야 합니다. 지금은 후일을 위해 살 길을 도모하는 것이 우선입니다"라고 간곡하게 조언했다.

마음을 다잡은 구천은 그때부터 자신의 침상 머리맡에 쓰디 쓴 돼지 쓸개(膽)를 매달아 놓고 눕고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혀로 핥았다. 구역질이 나고 온몸이 뒤틀릴 때마다 ‘내 언젠가는 이 원수를 반드시 갚을 것이다’며 인고의 세월을 견뎌냈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상담(嘗膽, 쓸개를 맛본다)이다.

한편 오나라의 선왕 합려 때부터 공신이었던 오자서는 월왕 구천을 살려두면 후환이 될 수 있으니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고 부차에게 여러 차례 간언 했으나,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았다.

범려가 이미 부차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서시(西施)를 이용해 미인계를 썼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월나라의 뇌물을 받아먹은 재상 백비(白嚭)와 서시의 간계로 오자서에게 자신의 보검을 내려 자결을 명했다.

오자서는 부차왕이 하사한 보검으로 자신의 목을 찌르며 곁에선 심복들에게 소리쳤다. “내 무덤에 가래나무를 심어라. 그것으로 어리석은 왕 부차의 관을 만들게 될 것이다. 또 내 눈알을 빼어 오나라의 수도 동문에 올려놓아라. 월나라에 의해 오나라가 멸망하는 꼴을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그러나 오자서의 섬뜩한 유언을 전해들은 부차는 오자서의 시체를 아예 말가죽부대에 넣어서 양자강에 버리도록 명령했다.(下에서 계속)





덧붙이는글
역사를 보면 경영이 보인다. 좋은 리더가 되려면 ‘철학과 문학과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왜 그럴까? 원가분석과 마케팅 능력, 직접적인 경영수업을 하는데도 시간이 아까운데? 물론 실용학문을 익혀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를 알면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눈이 생긴다.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보는 경영자는 발전할 수 없다. 역사적 인물을 통해 지혜와 철학을 배우는 것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