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칼럼] 빈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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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칼럼] 빈 손
  • 뉴스밴드(편집부)
  • 승인 2018.03.2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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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칼럼니스트

페르시아 제국과 이집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 방대한 영토를 정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소위 그리스의 폴리스(polis)를 붕괴시키고 세계통일을 추진했으며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도를 정복하려고 공격하던 중 바빌론에서 33세에 열병으로 사망하였다.

그가 사망하기 전에 신하들에게 유언을 하겠다고 모이도록 했다. 당연히 천하를 제패하고 대제국을 건설한 왕의 유언이기에 큰 호기심으로 신하들이 모였다.

신하들 앞에서 알렉산더는 “나를 묻을 때 내손을 무덤 밖으로 빼놓고 묻어주게.”였다. “천하를 손에 쥔 나도 죽을 땐 빈손이란 걸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네.”라 하였다. 그는 살아서 흙을 밟고 다녔지만 죽은 후에 흙 밑에 묻혀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되었다.

사람이 살면서 돈 쓰는 재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에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권력이란 더욱이 무소불위의 권력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지게 할 수 있다 했으니 권력에 맛을 들인 사람들이 어찌 권력을 내려놓을 수 있으랴 싶다.

명예야말로 인간이 갈망하는 최대의 소망인지도 모른다. 돈과 권력과 명예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허무함이 느껴진다. 주어진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어떻게 활용해야 모두가 존경할까. 해답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실행하기가 매우 힘든 모양이다.

오래전에 나는 “무소유”라는 수필을 읽고 감명을 받은바 있다. 내용인즉 지금은 강남의 노른 자위에 자리 잡고 있는 봉은사의 스님 이야기이다. 잘 알려진 스님은 값비싼 란을 선물로 받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절을 떠나 한참을 걸어가서 배를 타고 건너야 서울에 갈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배를 타고 건너다가 문득 햇볕에 란 화분을 내놓고 왔으니 겨울밤이라 얼어 죽을 것이 걱정되었다. 할 수 없이 되돌아가 화분을 방에 들여 놓고 다시 외출을 하고 다음날 돌아왔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란 화분에 매여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게 되어 소장자를 찾아 양도를 했다고 한다. 즉 소유가 인간을 얼마나 구속하고 자유를 빼앗는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말로는 하루 세끼를 먹고 내 몸 하나 누울 수 있는 공간과 필요한 세간과 약간의 돈만 있으면 족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럴까 싶다. 친구를 만나 내가 점심을 사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얻어먹고 오면 빚을 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다.

받기보다 주는 것이 좋은데 주머니와 타협이 되지 않을 때 마음이 불안하다. 그래서 돈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많다. 나는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권력자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뀌고 굽실거린다.

제가 무언데 하면서도 권력이 있는 사람 앞에서는 아부하기에 바쁜걸 보면 권력도 좋아 보인다. 그러나 권력을 누리던 그들도 나이 먹고 늙으니 별 볼일 없어 보이고 또한 실제가 그런 듯 보인다.

어느 날 충북의 어느 시골에 살고 있는 소설가인 노교수님을 방문했다. 소박하면서 넓직한 마당이 있는 주택에는 농민문학관이란 작은 푯말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농민문학을 지도하고 계셨다. 환경이 좋은 도시를 벗어나 아직은 생활여건이 열악한 농촌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더욱이 1960년대에 내가 대학에 재학 중일 때 당시에 국학대학 문예장학생이었던 분이 있다. 영동의 집으로 방문하여 점심을 먹고 돌아온 기억은 있는데 그 후로 만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 분이 시인으로 농사를 지으며 이웃에 살고 있어서 함께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농사꾼으로 시를 쓰는 그의 서정적 심미감에 머리가 숙여진다. 대학재학 시절부터 시를 잘 짓기로 소문이 있었는데 그의 시혼이 빛을 발하기를 기원한다.

나는 아내와 이별을 한 후에 몸서리치는 고독에 우울한 날을 많이 보냈다. 전적으로 아내에게 의지하고 살았던 세월이 지나고 보니 행복이었던 시절이라 생각된다. 혼자서 독립된 생활을 하기도 어렵고 또한 인생의 종점에 가까이 온 느낌이 있어서 먼저 책을 후학과 친구에게 많이 주었다.

어떤 것은 버리기도 하였고 지금은 생활에 필요한 것만 남기고 생활용품을 버리고 있지만 아직도 가진 물건이 너무 많다. 어차피 빈손으로 갈 텐데 어서 버려야 한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그놈의 욕심이 아직도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마음을 비우자고 다짐을 한다.

이제 와서 돈과 권력과 명예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오늘 하루 글을 읽으며 무사하게 지낸 것이 다행스러운 삶인데. 그러나 인구에 회자하는 한 편의 시를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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