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정희]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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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정희] 빈자리
  • 뉴스밴드(편집부)
  • 승인 2016.12.0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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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칼럼니스트

금방이라도 방문을 열고 ‘여보’하고 들어올 듯싶다. 
따뜻한 쌍화차 한잔을 들고 2층 내방으로 올라오곤 했었는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이 시간 아무리 방문을 쳐다봐도 기척이 없다. 

이심전심일까 딸이 차를 들고 내방을 노크한다. 
그 사람은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었는데 딸은 노크를 한다. 아내와 딸의 차이일까?

딸은 제집으로 가야 하는데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필경 나 때문이다. 부녀로 만나 딸의 가슴에 멍울을 들게 하는 것은 또 무슨 인연일까? 딸은 소리 없이 제 엄마의 유품을 정리한다. 

입술을 꼭 다물고 있는걸 보면 제 마음이 몹시 아려오는 모양이다. 애비의 마음이 상할까 봐 눈물을 감추는 모습이 역역하다.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내방으로 올라와 깊은 호흡을 뱉는다. 딸을 빨리 제 남편 곁으로 보내야 한다. 아직은 딸이 있어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딸은 몹시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어찌 이 좋은 계절을 버리고 먼저 떠나야 했을까. 병실 창 너머로 물들어가는 수목을 보며 곱기도 하다고 말을 하면서 어서 퇴원하여 단풍 구경시켜 달라던 말이 귓전을 때린다. 본인은 물 한 모금도 못 마시면서 내 끼니를 걱정하고 있었다. 

밥을 먹었느냐고 묻는다. 혼자서 밥상을 차리고 밥을 먹을라치면 목이 매여 넘어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고기찌게를 해 놓고 많이 먹었다고 대답을 하면 잘했다고 응수를 했다. 그것이 아내의 몫 이였던가?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병상의 아내를 돌보는 것은 옆자리 환우들에게 남편의 꾀죄죄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아내 때문 이였다. 아내는 이웃한 환우들이 남편을 부러워하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좋아했다. 

본인은 그렇게 고통스러우면서도 남편의 외모에 관심을 표하는 것은 아내의 따스함일까? 내가 자리를 비운 시간에 환우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자상한 남편의 보살핌을 바라는 환우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아내는 내 손을 꼭 잡고 놓지를 않는다. 세상에 당신만이 남편이 있는 사람이듯 눈빛을 준다.

멀고 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지 벌써 14일이 되었다. 10월의 마지막 밤이다. 금방 눈이라도 내릴 듯 날씨마저 음산한 이 밤에 잠을 들 수 없을 듯싶다. ‘여보’하고 부를 상대가 없으니 우두커니 벽만 쳐다본다. 

아내가 젊었을 때 수를 놓아 만든 액자가 쓸쓸해 보인다. 스스로 걸어서 욕실에 들어가 손과 얼굴을 씻고 내손을 꼭 잡으며 이야기를 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말문을 닫고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떠나 버렸다. 이승과 저승이 순간이던가? 야속한 사람! 이 밤엔 전등이 너무 밝다. 불을 끄고 촛불을 밝힌다. 촛불이 창문에 어른거린다. 

휘익 바람이 창문을 두들긴다. 촛불마저 춤을 춘다. 마지막 부딪힌 내 입술의 따스함을 고이 간직하소서!

나뭇잎이 고운 단풍으로 물드는 것은 긴 시간 햇볕과 사랑을 나눈 결정이다. 햇볕과 사랑을 나누듯이 그렇게 우리는 앞만 보고 살아왔다. 그런데 “어서 퇴원하여 맛있는 것 해드릴게” 이 말이 마지막일 줄이야. 공허한 가슴에 밀물처럼 밀려오는 외로움이 고독의 나래를 펴고 아내의 무덤가를 맴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딸을 찾았단다. 아들 밥은 앉아서 먹고 딸의 밥은 서서 먹고 지아비의 밥은 누워서 먹는다고 말하곤 했었는데 멀리 남의 집으로 보낸 딸이 걱정이 되었던가. 여자는 본시 피앙세를 찾아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거늘 무얼 그리 안타까워할까? 아내가 병원에 있을지라도 나는 베개를 나란히 놓고 잠을 자곤 했었는데 이제 짝 잃은 기러기처럼 허공을 쳐다보며 한숨짓는 이 공허한 밤은 빈자리가 너무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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